“음식을 하다가 맛이 조금 밋밋하다 싶을 때 국간장을 넣으면 깊은 맛이 우러나요” 음식을 조금 할 줄 아는 주부들은 집에서 손수 만든 국간장의 깊은 맛을 안다. 알고 있어도 막상 직접 담가 먹기 힘든 것이 서울살이다.
창4동에서는 ‘우리동네마을찾기’시범사업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아파트에서 직접 담가 먹기 힘든 장을 담아보자라는 말에 의기투합.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갔다. 특히 창4동은 99%가 아파트로 이루어져 있어 장담그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담근다고 하더라도 장독대가 마땅치 않아 햇살을 골고루 받은 깊은 장맛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에 착안하여 창4동 주민센터 옥상을 장독대로 이용하기로 했다. 장소가 비좁기는 하지만 하루종일 해가 잘 드는 곳이라 안성맞춤이었다.
주민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자 그 다음은 척척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내손이 필요한 곳이면 스스로 나와서 일을 하기 때문에 장담그기는 이웃간의 정을 나누는 일로 자연스레 발전했다.
사업결과를 알기 전부터 무조건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항아리부터 구입했다. 맑은 소리가 나는 항아리와 국산메주를 구입했다. 정월장은 음력 1월에 담그는 거라 이미 시간이 지나 삼월장을 담그기로 했다. 항아리와 메주가 준비되었으니 이제는 물이다. 물이 맛있어야 장이 맛있다는 어른들의 말에 따라 물은 고르고 골라서 샀다. 장을 잘 담글 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해서 체험자도 공모하고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일을 하는 것이 즐거워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항아리를 깨끗하게 씻어 말리고, 염도를 조절하기 위해 소금물에 500원짜리 동전을 띄워보고 메주에 소금물을 부어 된장이 잘 익어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5월 9일 드디어 장을 떴다. 메주만 건져 치대 된장을 만들고 소금물이었던 것은 다시 끓여 간장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곰팡이내가 나는 메주를 사야 좋다는 것, 된장을 담그고 나서도 항아리를 계속 닦아줘야 먼지가 쌓이지 않아 항아리가 숨을 쉰다는 것 등 사소하지만 잘 모르고 있었던 생활의 지혜들도 배워나갈 수 있었다.
된장을 더 익혀서 먹기로 하고 9월에 된장 나누기 행사를 했다. 창사골 음악회 후 남은 병들을 모아 깨끗이 씻어 말려 라벨을 붙여 팔았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다른 지역 주민들도 직접 만든 장이나 먹고 싶다고 해서 사전판매로 다 동이 날 정돌 인기절정이었다. 또 창4동에 살지 않는 주민들도 내년 행사엔 같이 참여하고 싶다는 문의도 왔다. 도봉구 14개 동의 28개 사업 중 최우수사업으로 선정되는 기쁨도 얻었다.
이 일은 담당했던 이남숙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작은 일이지만 주민들이 너나 할 것없이 모여서 참여했다는 것”이라며 “한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 의견에 의견을 보태고 빼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내 일로 만들었기 때문에 참여한 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뿌듯해했다.
말은 주민자치이지만 담당자가 바뀌면 업무가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일은 주민이 직접 했기 때문에 모두가 참여했기 때문에 담당자가 바뀌어도 주민자치위원장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창4동만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성과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주민들이 스스로 자기의 일을 하다보니 다른 일을 할 때에도 아이디어가 넘치고 재미있는 마을이 되었다. 그래서 창사골 음악제도 재능기부를 받자는 의견이 나와 창4동만이 아니라 이웃주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즐거운 축제로 만들기도 했다.
함께 장을 담그다 보니 건강에 좋은 먹거리도 나누고, 정도 나누고, 자부심도 커졌다. 창4동의 보석은 바로 주민들의 그 ‘자부심’이 아닐까.
윤은자 기자 yej388@naver.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