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5세의 남자아이가 자동차에 치여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영구장해’ 상태가 됐다. 이 아이는 100% 노동능력을 상실해 성장하더라로 전혀 일을 할 수가 없다. 이 아이가 배상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금은 과연 얼마나 될까? 기왕 지출했던 치료비와 앞으로 지출할 향후 치료비를 제외하고 순수한 일실이익만을 산정하기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억2,800여만원을 배상받게 된다. 그러나 이 아이가 미국이나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3억3,500여만원을 배상받을 수 있다. 무려 1억700여만원이나 차이가 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우리나라는 가동연한이 시작하는 20세, 즉 성년이 된 이후부터만 일실이익 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5세부터 19세까지 이 아이가 처하게 된 교육기회상실로 인한 학습권 침해, 치료과정에서 받는 육체적 고통, 장래 결혼의 어려움 내지 결혼생활상의 장애, 원하는 직업으로의 진입상의 어려움 및 이로 인한 수입상실 등에 대해서는 전혀 배상을 받을 수가 없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경우 성년에 이르지 못한 어린 아이, 초·중·고 학생들은 교통사고를 심하게 당해도 실무상 손해배상을 제대로 못 받고 있어 기준마련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헌법학자들 “성년기까지 일실이익 배상 안 하는 것은 위헌”= 우리나라 헌법학자들은 한결같이 이러한 법원 실무관행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는 설문조사가 나왔다. 설문조사는 박창수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아동이 성년에 이르기까지의 손해를 별도로 일실이익배상을 하지 않는 것이 헌법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달 중순 헌법교수 45명을 대상으로 이메일을 통해 실시했다.
우선 ‘아동에게 장해가 있는 경우 성년에 이르기까지 별도의 일실이익배상을 하지 않는 것이 위헌인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이들 헌법교수 전원이 위헌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또 ‘아동에게 손해배상을 한다면 비재산적 손해, 즉 무형적 손해로서 독자적으로 배상하는 방안과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로 배상하는 방안 중 어떤 것이 더 헌법에 부합하는가’라는 물음에는 대부분이 “성인과 같은 일실수입을 인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미성년기간 장해로 인한 무형의 손해에 대한 별도의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박 판사는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 5일 열린 교통·산재 손해배상 실무연구회 세미나에서 “아동의 학습권 또는 성장발달권이 헌법상의 권리로까지 해석되고 있고, UN아동권리협약에서도 아동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고 최선의 이익을 존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국가배상법시행령에서 10세 이하 아동의 사망과 영구장해로 인한 위자료 지급기준을 일반적인 경우보다 20% 감액한 것은 평등권 침해의 소지가 크다”고 주장했다.
◇ 소년소녀가장과 무직자·노숙자 등과의 형평성에도 문제 있어= 특히 소년소녀가장의 경우 지금의 재판실무를 적용하면 성년에 이르기까지 일실이익을 전혀 배상받지 못한다. 그러나 소년소녀가장들은 가사를 책임지고 병약한 조부모 내지는 어린 동생들의 부양을 책임진 미성년자들로서 본인의 학업도 병행해야 하는 실정이다. 2007년 통계에 의하면 전국에 소년소녀가장 가구는 1,630가구에 이르며 이 중 미취학은 25가구, 초등학생은 401가구, 중학생은 789가구, 고등학생은 1,226가구다. 반면 노숙자나 근로의지가 없는 장기 무직자가 사고로 장해를 입으면 현재 실무주류인 평가설에 따라 일실이익이 배상된다. 박 판사는 “법이론을 떠나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