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어느 날,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한 노신사가 책을 펼친다. 그 책의 이름은 기원전 700년경에 만들어져 현대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역경’이다. 무선 이어폰으로 최신 팟캐스트를 듣던 옆자리의 청년이 힐끗 노신사를 본다. 그 순간, 고전과 현대가 조우한다.
“할아버지, 그 책이 어떤 책인가요?” 청년의 질문에 노신사가 미소지으며 답한다. “이 책은 역경이라는 책일세 세상의 모든 변화의 원리를 담고 있지!” “세상의 모든 변화요? 그럼 비트코인 시세도 예측할 수 있나요?” 그러자 노신사의 너털웃음 소리가 지하철 객실에 퍼져나간다.
“젊은 이, 역경은 주식이나 비트코인 시세의 변화를 예측하는 책이 아니야. 하지만 변화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어쩌면 비트코인의 흐름도 읽을 수 있을지 모르지!” 노신사의 말에 청년의 호기심에 불이 붙었다. 노신사는 천천히 역경에 담긴 지혜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지. 젊은 세대의 밈(meme)처럼 말이야. 오늘의 트렌드가 내일이면 구닥다리가 되고, 레트로(복고풍)라는 이름으로 다시 부활하기도 하지. 역경에서는 이런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네. 오히려 그 흐름에 심신을 맡기라고 하지”
청년은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던 필터가 하루아침에 식상해지는 걸 떠올리며.
“하지만 할아버지, 요즘 세상은 엄청나게 빠르게 변해요. 젊은 저도 따라잡기가 힘들 정도로요” “그래서 더 중요한 게 균형이야. 역경에서 말하는 음양의 원리처럼 쉼 없이 달리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지. 가끔은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좋지. 젊은이의 인스타 피드에 일상의 소소한 행복도 올려보는 건 어떤가?” 청년은 자신의 SNS를 돌아본다. 화려한 여행 사진, 맛집 인증샷들 사이에 자신의 본 모습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의문이 찾아든다.
“역경의 64괘는 인생의 64가지 상황을 담고 있지. 예를 들자면 ‘준 괘’라는 괘는 어려움의 시작을 의미하지. 마치 자네가 처음 직장에 들어갔을 때처럼. 하지만 그 속에 새로운 시작의 씨앗도 있다네.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선물을 사드렸을 때의 그 기분, 기억나나?”
청년의 눈가가 살짝 촉촉해진다. 취준생으로서 힘들었던 시간, 그리고 첫 월급의 기쁨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친다.
“역경은 또 ‘시중(時中)’을 말하지. 때에 맞는 중용이야. 모든 상황에 정답은 없어. 때로는 열정적으로, 때로는 신중하게, 마치 요즘 세대가 말하는 ‘손절’과 ‘존버’의 타이밍을 아는 것처럼 말이야.”
노신사의 이 말에 청년은 피식 웃는다. 없는 돈에 아껴 모아 주식과 코인에 투자하고 조마조마해 하는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노신사는 계속 말한다. “작은 변화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효(爻)’의 개념도 있어.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 들어봤나? 자네의 작은 친절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거라네”
청년은 문득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했던 임산부가 던진 감사의 미소를 떠올려본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이란 것도 있지. 하늘과 인간이 하나 된다는 뜻인데, 요즘 말로 하면 ‘제로 웨이스트’ 운동 같은 거라네.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는 것이 곧 우리를 지키는 일이지!”
청년은 가지고 다니는 텀블러가 작지만 의미 있는 자연에 대한 자신의 작은 예의라는 생각에 뿌듯해짐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태극(太極)’이라는 개념이 있지. 모든 것의 근원적 통일성을 나타내는 거라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결국은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거야. 요즘 말로 하자면 ‘다양성’과 ‘포용의 정신’이라고나 할까?”
노신사의 이 말씀에 청년은 최근 직장에서 있었던 상사와의 세대 간 갈등을 떠올린다.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어느덧 지하철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청년과 노신사는 아쉬운 듯 일어선다.
“할아버지, 정말 감사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말씀 속에서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허허,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 하지만 명심하게. 역경의 지혜는 그저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삶 속에서 실천해야 진정한 의미가 있는 거라네.”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노신사와 작별 인사를 나눈다.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청년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그리고는 SNS 대신 전자책 앱을 열어 ‘역경’을 입력해 검색한다.
기원전 700년경에 만들어진 지혜로운 책이 21세기의 기술을 만다는 순간, 새로운 변화의 씨앗이 싹튼다. 청년의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새롭고 가볍다. 오늘부터 그의 인생의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역경이 말해주듯,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