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구 지명위 통과, 서울시 검토 남아
고유 지명 없애는 판단 ‘안타깝다’ 의견도
노원구(구청장 오승록)가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을 불암산역으로 역명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구는 역명(驛名)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지역의 이미지를 낙후된 곳으로 고착시킨다는 주민 불만이 많다는 이유를 들었다. 또한, 당고개역이 개통된 시점에도 이미 ‘당고개’는 주민들에게 낯선 명칭이었던데다가 민속신앙과의 연결성을 불편해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고 밝혔다.
구가 역명 개정에 나선 것은 최근 당고개역이 위치한 상계3·4동의 재정비촉진사업의 진행과 관계가 깊다. 한때 서울 동북부의 끝자락이자 달동네였던 상계3·4동은 6개의 구역에서 재정비 촉진사업이 진행 중이다. 그중 4구역과 6구역은 이미 완료되어 대단지 아파트의 입주를 마친 상태다. 나머지 구역의 주거단지 정비, 도시개발 등 역세권의 환경이 크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낙후된 동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당고개역의 명칭은 지역의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구가 지난 5월에서 7월까지 진행한 주민 의견수렴 결과 재정비가 완료되어 새로 입주한 주민들을 중심으로 역명 개정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견이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구 관계자는 이러한 주민 의견수렴 결과가 역세권의 환경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며 동시에 기존의 역명으로 사용하던 목적물이 소멸하여 시민들의 혼란을 초래하는 현상을 보인 것으로 설명했다.
구는 당고개 역명 개정을 위해 올해 3월 새로운 역명의 주민공모, 역명 후보 선정을 위한 심의와 주민 의견수렴에 이어 지난 7월에는 노원구 지명(地名)위원회를 개최했다. 지명위원회는 당고개역의 역명 개정 사유가 ‘적합’하며, 새로운 역명으로 ‘불암산역’을 의결했다. ‘불암산역’은 주민 의견수렴 결과에서도 과반수의 선호도를 보인 역명 후보였다.
그러나 구가 추진 중인 당고개역 역명 개정에 대해 반대 의견도 제시됐다. 지역의 고유 지명은 그 지역의 역사를 담아내는 것임에도 특정한 이유로 이를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 지하철역 명칭 중 역사적이거나 고유 지명을 담아낸 곳은 ‘장승배기역’과 ‘애오개역’, ‘여의나루역’ 등이 있다. 장승배기역은 장승이 있던 곳, 애오개역은 몇 가지 설이 있으나 그중 하나는 도성의 어린아이 시신을 내보내던 고개로 뒤를 따르는 가족들의 곡소리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당고개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서울지명사전에 따르면 옛날 성황당이 있었고, 또 미륵당이 있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한자명으로 ‘당현’이라고 불렸다. 미륵당과 관련해서는 영조 때 40여 년을 궁에서 지내며 사도세자를 섬겨온 궁녀 이씨에 대한 전설이 있다. 동네 사람들은 이 고개에 미륵당을 세우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으며, 그 뒤 고종 때 경복궁 중건공사를 하면서 이 당을 헐어가고 터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본지에 이견을 제기한 주민은 ‘당고개역’이 종교적으로 불편하다면, 당현천 명칭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당고개 역명 개정은 서울시 지명위원회 심의를 거쳐 서울시 도시철도과의 결정을 통해 시보에 고시까지 되어야 최종 확정된다.
지역의 고유 지명을 살리지 못하고 숫자로 나열된 동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노원구, 서울시 지명위원회의 판단에 귀추가 주목된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불암산의 자연환경과 주거단지 재정비를 통해 변화하는 지역의 실정과 맞지 않는 명칭에 대해 주민들의 의견이 모인 것은 의미 있는 결정”이라며, “지난 2013년 현실과 맞지 않던 성북역의 명칭을 광운대역으로 변경한 것처럼, 지역의 정체성에 맞는 새로운 역명을 상계3·4동에 돌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이경충 기자 nnews2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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