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란 무엇일까. 어째서 인권이라는 말을 그다지도 강조하는 것일까. 인권을 말하는 사람이 많은걸 보면 인권이 얼마나 중요한 의제(擬制)인지는 알겠는데 막상 인권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눈만 껌벅인다. 그만큼 인권은 사람의 살아가는 기본이기 때문에 구태여 토를 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인권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권리다. 인권주간에 써먹는 말이긴 하지만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표어는 인간의 평등을 간략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기 때문에’ 이 말이 나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아무런 권력도, 돈도 없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위에 군림할 사람은 없다는 뜻이며, 모든 것을 지니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 밑에 부릴 사람은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권력과 돈은 분명히 사람 위에 도사리고 앉아 있으며 그 밑에 줄줄이 머리를 조아리는 군상이 존재한다. 과거 왕조시대에는 그 서열이 제도적으로 고착되어 있었다.
신분사회의 틀 속에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의 계급ㅈ이 정해졌다. 양반과 상인으로만 구분된 게 아니다. 그 안에서도 더 세세하게 구별되어 위아래가 분명했다. 우리나라는 평등사회를 이루는데 적응이 빠른 나라에 속한다. 인도는 아직도 카스트제도에 묶인 뿌리 깊은 신분제도가 판을 친다. 이를 없애려면 경제적 성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먹을 것 제대로 못 먹고 입을 것 제 때 찾아 입지 못하는 주제에 신분문제를 따질 겨를이 있겠는가.
개인적인 부가 향상되면 교육 받을 기회가 확산될 것이며 소득에 대한 세금을 납부하게 된다. 의무를 이행하면 정부를 상대로 요구할 권리도 생긴다. 이 과정에서 신분은 사라지고 인권의 확립이라고 하는 명제만 남는다. 이렇게 얻어진 인권이 자칫 공권을 무시하는 사태로 발전할 수도 있다. 공권은 신분과는 전연 다른 개념이다. 공권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국가의 권력이다. 이 권력은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정부가 함부로 좌지우지해선 안 된다.
그런 나라는 독재국가다. 한낱 공복(公僕)에 불과한 사람들이 자신의 고유권한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여 내두르면 국민은 권력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고 사회는 공포에 휘말린다. 쿠데타와 같은 방법으로 정권을 탈취한 자들이 국민을 억압하는 독재국가를 만든다. 우리에게도 두 번이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공권은 잘만 쓰면 국민을 위해서 큰 역할을 한다. 그 첫째가 국민을 보호하는 기능이다.
이 세상에는 가지각색의 범죄가 있다. 일반국민들이 범죄에 대항하기에는 그 힘이 너무 약하다. 정부가 범죄를 막아줘야 한다. 그에 따라 범죄를 처벌할 법률도 엄청나게 불어났다. 치안을 유지해야 하는 경찰력도 커졌다. 그런데도 치안은 불안하다. 살인사건 등 온갖 범죄가 시민을 옥죄인다. 나날이 범죄율은 높아만 간다. 이에 대응하는 경찰력과 사법기관의 대처방법도 구체화하고 있지만 국민을 흡족하게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확실하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요즈음 시민들의 공권에 대한 태도는 전혀 경외심을 찾아볼 수 없다. 공권은 정명(正明)해야만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 위임받은 권력을 정정당당하게 쓸 수 있어야 하며 그 엄정함이 추상같아야 한다. 공권력이 정당하게 쓰이지 못하면 불신의 대상이 된다. 남용하면 존경받지 못한다. 맡은바 소임을 정당하게 다 할 때만이 공권력은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공권력은 공포의 대상이었을 뿐 존경과 신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민주화를 이룩한 오늘의 공권력은 범죄자에 대한 엄정한 응징, 약자에 대한 철저한 보호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본원칙이 차질 없이 여행된다면 인권과 공권은 양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우리 공권력은 강화된 듯하면서도 정치적인 이유로 위축되어온 게 사실이다. 공권력을 대표하는 경찰력은 정치적인 도구로 전락한 때가 많았다. 야당을 감시하는 정보기능이 기승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또 다른 이유로 정치적인 시위와 집회에 무기력한 모습을 노출시키기도 한다.
시위대로부터 얻어터지는 경찰의 모양은 곧 술 취한 주객과 인터넷 협박에도 굴복하는 나약한 입장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얻어터지고 폭행당하면서도 정치적 고려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경찰지도부의 몸 사리기가 결국 하부 경찰력까지 허약하게 만들었다. 이제부터는 인권과 공권이 상호 존경과 신뢰를 쌓으며 양립하여 발전해야 된다는 점을 크게 깨달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