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결혼시즌이 되었다. 사계절 중에서 가장 많은 결혼식이 봄에 이뤄진다. 추웠던 겨울을 이겨낸 삼라만상이 모두 기지개를 켜고 새로운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게 봄이다. 봄이 되면 신춘(新春)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인다. 다른 계절에는 새로울 신(新)짜가 붙지 않는데 유독 봄철만 신춘이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봄이 새로운 싹을 틔우기 때문이다. 말라 비틀어졌던 산천이 땅속에서 우러나오는 물기를 머금으며 파란 싹이 돋는다. 꽃이 피어난다.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산천으로 놀러가는 행락객의 발걸음은 자신도 모르게 가벼워진다. 가는 곳마다 먹거리도 풍요롭다. 갓 돋아난 나물이 풍기는 향긋한 내음은 입맛을 돋운다. 두꺼운 겨울옷을 벗어버린 사람들의 패션이 울긋불긋 취향에 따라 멋들어진다. 이런 시절에 결혼이 몰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청춘남녀들은 아끼고 사랑하던 짝을 세상에 내놓고 “이제부터 우리는 한 몸이 되었다”고 선언한다.
아담과 이브가 살던 이상 세계를 뛰어넘어 이제는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의 험하고 부끄러운 세계로 뛰어드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온실 속에서 자라던 부모의 품을 떠나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풍파에 몸을 맡기게 된다. 이를 주관하는 사람이 결혼 주례자다. 우리나라에서 주례를 가장 많이 섰던 사람은 한글학자 한갑수와 국문학자 양주동이다.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노승환도 그 범주에 속한다. 이들이 주례를 많이 서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학식과 덕망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훤한 인물과 말솜씨가 청중을 휘어잡았다. 남의 결혼식에 주례를 맡은 사람이 더듬거리거나 질질 끌면 신랑 신부는 말할 것도 없고 하객들도 지치게 된다. 그런데 위에 든 세 분은 용례도 풍부하고 유머도 남달라 결혼식장을 쥐락펴락 마음대로 요리했다.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경지다. 한갑수는 한 때 하루에 열두 쌍의 결혼 주례를 맡았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있다.
이 정도면 다리에서 요령소리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제자들을 위해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꺼이 주례를 맡았다. 한갑수와 양주동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그들의 주례를 받은 신랑 신부들은 모두 잘 살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례사를 통해서 신랑신부에게 전하고자 했던 얘기는 무엇일까. 내용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결혼 당사자들도 사진 찍고 나면 잊어버린다는 주례사를 어느 누가 기억하고 있으리오.
다만 평생을 살아갈 금과옥조를 모두 말씀했을 것은 분명하다. 그 중에서도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는 것을 뺄 수는 없다. 신랑 신부의 오늘은 부모가 없었다면 생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각자 자신의 부모만 모시고 살아왔지만 오늘부터는 상대방의 부모까지 모셔야 하니 네 분의 부모님을 모시게 되었음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인생살이의 한 단면을 알림으로서 효도를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 요즘 부모에 대한 효성이 미미하다고 경종을 울리는 일이 잦은 판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신랑 신부에게 이를 분명히 밝혀주는 것은 주례로서의 당연한 도리다.
다음으로는 당사자들의 인격과 관련한 문제다. 신랑 신부는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을 한다. 연애를 하거나, 중매를 했거나 간에 뜻이 맞고 애정이 생겨 혼인을 맺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을 의심할 이유는 하등 없다. 문제는 사랑만으로 연애는 할 수 있겠지만 가정을 꾸려나가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있다.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데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한다. 우선 살림할 수 있는 돈이 있어야 한다. 아기들이 태어나고 쓰임새가 점차 많아진다.
돈은 최소한도로 가지면 되겠지만 서로 간에 믿음이 더 큰 문제다.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던 상대의 약점도 알게 되고 애정도 불같이 타오르진 않는다. 그러다보면 존경심이 사라진다. 이 때 위기가 온다. 존경심이 없는 가정생활은 불안해지고 갈등이 증식한다. 부부 간에 존경심을 갖는 것은 사랑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애정에 곁들여 존경심이 가미되면 얼마나 행복한 가정이 이뤄질 것인가.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주례의 말씀은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강조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유한다. 과거 불란서가 낮은 출산율로 인하여 괴로워하다가 적극적인 출산 장려책을 써서 지금은 인구의 대폭 증가를 시현한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인구 억제정책을 썼던 우리가 너무 나가다보니 엉뚱한 부작용으로 이제는 인구 증가를 장려해야 할 급박한 사정이 생겼다. 주례는 이에 대한 사회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신랑 신부에게 2세를 먼저 낳으라고 지적해줘야 한다. 이런 것들을 잘 정리하면 새로운 봄철에 새 가정을 이루는 신랑 신부에게 큰 도움이 되는 얘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앞날에 항상 빛이 반짝거리기를 빌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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