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춘희 씨 「치매극복 체험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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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춘희 씨 「치매극복 체험수기」

등록날짜 [ 2010년10월04일 13시21분 ]

밤늦도록 엄마는 오늘도 안주무시고 누워계신 침대가 버스라고 우기시며 정거장을 지나쳤다며 내려 달라고 야단이시다.
액자 뒤에 뱀이 있다. 무서우니 어서 잡아라.
참새가 모자 뒤에 새끼 낳아서 먹이 달라고 하니 밥 좀 갖다 줘라.
여기가 어디냐? 집에 가자...
엄마 여기가 어디긴 어디야 집이야 집! 장롱 문을 열고 엄마 옷이며 소지품을 보여준다.
자. 이것 엄마 바지, 스웨터 가방... 집이니까 엄마 옷이랑 다 있잖아!
막무가내 아니시란다.
이럴 때 진정시키는 방법은 같이 동요를 부르는 것이다.
자.. 엄마같이 노래하자. 송아지. 학교종이 땡땡땡 개나리 자전거 산토끼 등 내가 먼저 크게 소리내면 같이 하신다. 가끔 가사를 엉뚱하게 부르시기도 하지만...
엄마 틀렸어 이렇게 해야지 하면 빙그레 웃으시며 그래도 당신이 맞단다.
그래 맞아. 내가 틀렸어 해야 좋아하신다.
근래 또 낮과 밤이 바뀌신게다.
엄마는 장기요양1등급 환자이며 인지기능과 신체기능을 거의 상실하신 상태이며 오로지 딸인 나만 찾으신다. 지금 나는 조금 전과는 아주 판이하게 변한 또 다른 엄마의 한없이 평온해 보이는 얼굴을 바라보면서 지난날 치매가 무슨 병인 줄도 모르고 엄마에게 막무가내로 대했던 나를 생각하며 이루어지지 않을 소원인걸 알면서도 언젠가는 엄마가 완쾌되어 이글을 보시고 화사하게 웃으시며 “내가 그랬어,,,, 내 딸 수고했네” 그 말이 듣고 싶다.
엄마. 한없는 사랑으로 하나뿐인 자식 금지옥엽 키워주신 은혜 너무 감사드려...
하지만 지금이게 뭐야! 빨리 털구 일어나야지 영 이상한 할머니가 되어 버렸잖아.
엄마. 몇 년 전 안경, 틀니, 반지 모든 소지품을 다 잃어버리시고 나한테 내어 놓으라고 야단하신 것 알고 계셔?
밥한다고, 솥, 냄비 할 것 없이 그릇그릇 쌀 씻어 담아놓던 일
내가 잠시 마트 간 사이 기저귀 다 뜯어버리고 방, 침구, 엄마 모두가 배설물 투성이가 되어버려 난 어떻게 할 줄 몰라 엉엉 소리치며 울어버렸잖아.
속옷 바람으로 아파트 복도를 기어다녀 숯검뎅이가 되어 버렸던 엄마 목욕이라도 하려면 내 머리카락을 잡고 안 하겠다며 떼쓰던 일
이웃집에 들어가서 소변을 흘리고 다녀 락스통, 걸레 들고 치우면서 너무 미안해 몸 둘 바를 몰랐던 나
그때 심정 엄마 어땠는지 알어. 아이고...더러우니까 씻어야지 냄새 나잖아 . 말하면서 막무가내로 역정을 내는 엄마 등을 때린 적이 있지 .
그때 엄마는 죽여라. 죽여하며 나를 막 때려서 그래 같이 죽자 엄마 같이 죽어 하며 울고 불고 하던 나.
그때 엄마 눈동자는 너무 무서웠어
난 그 당시 갑자기 살기가 어려워지니까 괜스레 엄마가 불안해하고 비정상적으로 억지부리는 줄 알고 나는 나대로 엄마한테 신경질 내고 그런데 엄마가 중증치매진단을 받고 나서야 치매가 이런 병이구나 엄마가 나에게 한 행동이 건망증과 억지와 악함이 병의 원인이라는 것도 뒤늦게 깨달고는 지난날 엄마한테 나 힘들고 내시간 다 빼앗아가고 내 인생 엄마한테 저당잡혔어 하며 난리피우던 내가 너무 부끄러워
엄마 사촌 오빠가 지어주신 별명있지?
키가 작고 통통해서 지어준 별명 펭귄
항상 화장하고 멋에 관심이 너무 많으셨던 우리 엄마
그런데 지금 팔, 다리 좀 봐
근육도 하나도 없고 누워만 계셔서 욕창까지 생기고 쳐다보면 코끝이 찡해
난 엄마가 걸어다니면서 말썽도 피우고 악이 악쓰고 다투고 했던 때가 내 몸이 더욱 고달팠더라도 그때가 더 나았던 것 같아
지금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은 너무 가슴 아파.
조금이라도 정신이 맑을 때 거동이라도 겨우 하셨을 때 같이 외출도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드리고 했어야 했는데 후회스러워 엄마 미안해
엄마가 나를 애틋하게 키워주셨듯이, 아기가 되어 버린 우리 엄마
사랑으로 보살펴 드렸어야 했는데...
이제 그걸 깨달았으니 내가 불효막심이지?
그래도 얼마 전부터는 노인장기요양보호팀에서 요양사가 파견되어 나를 도와주니 잠깐이라도 외출 시 초조한 마음과 허겁지겁 대던 난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마트, 은행, 병원(난 1998. 11. 증증 근무력증으로 흉선 수술을 받고 현재까지 약 복용 중)을 다닐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무엇보다도 의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 많이 생겼다는 것이 기쁘구.
엄마에게 꼭 필요한 물품지원(기저귀, 물티슈, 방향제), 약값 지원 등을 받으며 치매환자를 대할 때의 마음가짐과 태도의 교육도 받고 있어.
짧은 시간이였지만 스파게티 먹는 즐거움과 함께 확 트인 공간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던 야유회도 다녀왔구.
형형색색의 꽃으로 아무 잡념없이 집중할 수 있었던 꽃꽂이 시간의 여유
보호자들간의 간병경험을 서로 소통하며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곳이 있어 요즘은 정말 살 것 같아.
희망이 없는 사람을 돌보는 것은 가족뿐이 없을 거야.
하지만 나에게는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해소해주고 힘이 겨워도 순간순간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동반자가 생긴 것 같아.
마음을 터 놓고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을 수 있는 공간 “치매지원센터”
정말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아
이젠 더욱 잘할게 노래도 불러 드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주고 알았지?
어... 엄마가 잠이 드셨네.
벌써 새벽 5시가 넘었어 동이 트려나봐
엄마. 아무 생각이 없는 이처럼 마음 편해 보여
얼굴이 너무 해맑아서 아기 얼굴같아
꿈속에서 돌아가신 아빠와 즐거운 데이트 하시길 바라...
엄마의 사랑스러운 딸 춘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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