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어떤 맛인가? ··· (3)
석선혜 ▶(사)한국문인협회 회원 ▶조계종 법륜왕사 주지 ▶(사)서울문인문학회 고문
친구는 '동무'나 '벗'이라는 다른 용어로 차를 훌쩍 단숨에 마시면 목마름은 삭일 수 있지만, 그런 차 마심은 일반 음료수 효과만 느낄 수 있다.
차를 다법(茶法)대로 격조 있게 마시면 차의 참맛(眞味)에 따라 덕목(德目)과 성품에 녹아들어 인격도야(人格陶冶)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차를 찻잔 속의 찻물을 바라보며 대자연의 빛깔, 변화를 생각하고, 다음 입과 코에 가까이하여 향기를 가슴 깊이 취하고, 차 한 모금을 혀 위에 올려 굴리면서 차의 덕목(德目)과 성품과 빛깔과 향기에 묻어난 맛을 음미(吟味)하며 넘기는 것이다. 이 빛깔(色), 향(香), 맛(味)을 세 가지 기이함(三奇)라고 하는데 기(氣) 한 가지를 더하여 네 가지 기이함(四奇)라고도 한다.
이 기이함속에 차의 모든 성분과 효소가 들어 있어서 여러 효과가 난다. 현대의 보건학으로 분석하면 카페인, 탄닌, 아미노산, 비타민으로 나뉘는데 차의 4가지 성분이라고 하면, 이 성분과 효소가 빛깔, 향기, 참맛을 내며 약 78가지 효과를 발휘한다.
차 맛은 일반적으로 쓴맛, 단맛으로 느껴지지만 한의학으로 분석해보면 쓴맛, 단맛, 떫은맛, 짠맛, 신맛이 갖춰져 있다. 쓴맛은 심장의 기능을, 단맛은 비장의 기능을, 떫은맛은 폐장의 기능을, 짠맛은 신장의 기능을, 신맛은 간장의 기능을 도와 건강한 몸을 유지하게 한다고 한다. 즉 오장이 서로 화합하게 하여 건강한 삶을 살게 한다는 것이다.
옛말에 "차를 잘 마시면 지혜가 밝아지고 젊음을 지키게 하며, 술을 잘못 마시면 건강을 해치고 지혜가 없어진다"고 했다.
차 맛을 다섯 가지만 있다고 하면 맞는 말인가? 대체로 차는 다섯 가지 맛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섯 가지 맛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 차가 향기로우면 맛도 있다고 하지만 향기가 없어도 맛이 있는 차가 있다. 10년 이상 묵은 보이차나 오래된 발효차에서는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고 부드러운 맛만 느껴진다. "무슨 맛이냐?"라고 물으면 "부드럽고 표현하기 어려운 맛을 찾아 즐긴다"라고 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맞지 않는 말이다. 개인적인 기호로 찾아가는 주관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또, 차는 기호식품이기 때문에 이런 평가를 잘못된 평가라고 할 수 없다.
마치 친구나 이웃을 사귈 때 장점은 없지만 그냥 좋아서, 순박해서, 이웃에 살기 때문에 등의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가까이 지내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다.
차의 빛깔, 향기, 맛을 차례로 감상하여 마시는 차 맛은 미묘하고 신기하고 그윽한 초록빛 대자연의 맛이다. 이 맛에 이끌려 찾아가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을 깊이 더듬어 옥과 돌을 골라내게 한다. 차 마심과 관계가 오래도록 깊어지게 되면 생각이 멈추어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고요함에 이르러 백지처럼 밝고 욕심 없는 바라밀다가 이루어져 '생명이 있기 전의 소식', '태초 창조 이전의 존재와 허무'를 알게 한다. 이런 까닭으로 차와 선은 한 가지(茶禪一如)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물과 불이 관계하여 물이 달여지고 다시 차와 관계하여 한잔의 차가 탄생한다. 사람의 삶도 관계에서 관계를 맺으며 또 다른 관계를 연이어 맺어가며 사는 것이 인생 한평생이다.
마치 생선을 묶은 새끼에서는 생선 냄새가 나고,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는 것과 같이 차를 즐기며 도란도란 나누는 얘기에서는 차향기가 묻어나 매우 격조가 높다. 험담이나 구린내 나는 이야기는 차의 성품과 맞지 않아 저절로 하지 않게 된다. 초의 선사의 시에 옛 부터 성현들이 차를 사랑한 것은 군자의 성품을 닮아 삿된 기운이 없어서 이네라고 했다. 맑고 아름다우며 슬기로운 마음을 찾아가는 데는 차를 마시는 생활이 제격이다.
함허선사의 시에 '한 잔의 차에서 한조각 마음이 나오며 / 한조각 마음속에는 한잔의 차가 있네 / 날 마나 즐기는 한잔의 맛에 / 한량없는 즐거움이 나오네'라고 했다.
차 한 잔의 참맛을 본다는 것은 차의 성품과 관계를 맺어 영원한 소리와 참모습을 찾아가는 길(道)이며 다도(茶道)를 닦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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