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맨 먼저 겪어야 하는 것이 인간관계다.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더불어 살아가기 어려운 법이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는 말도 있고 가는 홍두깨 오는 몽둥이라는 말도 있다. 사람끼리의 사귐에 있어 부드럽고 좋은 말을 써야 한다는 경구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구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환경과 처지에 따라 달라진 모습을 보일 때 문제가 생긴다.
평소의 언행으로 보면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느닷없이 엉뚱한 말을 해서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린다. 더구나 그 사람이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미치는 파장이 커진다. 지도적 위치에 도달하기 까지 그는 각고의 노력을 했을 것이다. 공부도 많이 하고 가정교육도 잘 받아 학식과 덕망을 갖춘 사람을 우리는 지도자로 생각한다. 특히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공직자의 경우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단점과 장점을 선거민에게 노출시켜 선택을 받는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 했다.
피를 말리는 각고의 과정이다. 이를 뚫고 선택받는 사람이 일개 지역의 대표자로 끝나는 수도 있지만 운 좋고 복 많은 사람은 전국적인 지도자로 부각되어 나라를 이끌어가는 역할도 맡게 된다. 이처럼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사회명사의 반열에 오른 지도자급 인사가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했다는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본인에게도 불행이지만 국가나 사회를 위해서도 가장 바람직스럽지 못한 일이 된다.
성 문제는 하루 이틀 사이에 생긴 일도 아니다. 또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가끔 말썽을 부리는 일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근엄하기 짝이 없는 가톨릭 신부가 어린 소녀 소년을 상대로 성추행을 저질러 바티칸이 동원되는 법석을 떨기도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르윈스키와 성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많은 사람을 낯 뜨겁게 만들고 세계의 비웃음꺼리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중에서도 과거에 성 추문으로 신문지상을 더럽힌 이가 한 둘이 아니다. 환경운동으로 이름을 날리던 어떤 교수는 여대생을 강제 추행했다는 치명적인 혐의로 잘 나가던 전정(前程)을 망친 일도 있다. 어떤 정당의 중책을 맡고 있던 국회의원은 기자들과의 저녁 식사 후 친목도모를 위해서 노래방에 갔다가 술김에 여기자의 몸을 더듬었다는 고발로 당을 떠나야 했다. 그나마 그는 지역구 관리에 뛰어난 솜씨를 발휘해 무소속으로 재기하는 저력을 보여 또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정치인 중에 성 스캔들로 인하여 신세를 망친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닌데 잊을 만하면 이러한 전철을 되풀이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 점이 많다. 이는 평소 성 문제를 하찮게 생각하는 가부장적인 권위의식에 기인하거나 부도덕성을 가볍게 보는 의식 부재에 있다고 보인다. 이번에 말썽을 빚은 대표적 인사는 국회의원 강용석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젊은 지도자로 촉망받는 사람이다.
그가 대학생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아나운서를 지망한다는 여대생에게 “모든 것을 다 줘야 하는데 그래도 하겠느냐”는 투의 말을 했다는 것이 성희롱으로 꼬리를 잡혔다. 그의 인식 내면은 우리가 알배 아니지만 성희롱을 하려고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다만 말의 뉘앙스가 성희롱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저질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어서 여대생들에게 수치감을 안겨줬던 모양이다.
한편 고창군수 이강수라는 사람은 군수로 당선한 지 겨우 한 달 만에 하필 군청 여직원에게 “누드 사진을 찍는데 모델이 되어 달라”고 했다니 프로 모델에게 주는 모델료를 아끼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데 이를 두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점입가경의 입씨름을 하고 있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강용석 사건이 터졌을 때 7.28재 보궐선거를 앞둔 시점이어서 민주당은 한나라당을 향하여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이 시점에 공교롭게도 고창군수 사건이 발생한다. 한나라당은 물실호기, 왜 민주당은 이 문제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있느냐고 힐난하고 나선 것이다. 성희롱이라는 본질은 제쳐두고 정당의 이익을 위한 상대방 헐뜯기에 눈이 충혈된 것처럼 느껴져 역겁기만 하다. 또 서울에서는 초등학교 교장들이 학부모에게 노골적인 성추행과 성희롱을 감행했다는 기사가 나왔으나 국회의원과 군수의 그늘에 가려져 한숨을 놓기도 했다.
이들이 모두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들이기에 국민이 받아드리는 충격은 크다. 그들이 모두 도덕군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여성을 비하하고 성문제를 윤리로 보지 않는 태도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문제가 터졌을 때 솔직히 시인하고 재빠르게 사과하는 것이 그나마 실수의 늪에서 건져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그들은 변명에 바쁘다. 온갖 기교를 다 동원하여 말의 뉘앙스를 이리 비틀고 저리 꼰다. 아무리 말을 바꿔도 국민은 그 얕은꾀를 먼저 알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공개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순서다. 잘못을 비는 자에게 윤리 도덕은 오히려 관대하다는 진리를 잊지 말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