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평안하고 안정되어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예로부터 농사는 풍년이 들고 전쟁이 없는 세상을 가리켜 태평성대라고 불러왔다. 태평성대가 계속되는 나라의 임금을 가리켜 성군(聖君)이라고 떠받드는 이유는 나라의 주인으로 일컬어진 왕에 대한 최대의 경의표시였다. 그러기에 왕이 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임무는 평화와 풍년이었다. 풍년을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경제안정이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안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강건한 병력을 유지하여 타국이 감히 전쟁을 걸어오지 못하게 해야 했다. 또 농사가 풍성해지려면 항상 관개시설을 돌봐 치수문제를 해결하고 농사법을 개량하여 많은 소출이 가능하도록 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백성으로 하여금 임금의 덕성을 믿고 따르게 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신민(臣民)의 신뢰를 획득한 임금에게는 언제나 용비어천가가 울려 퍼졌다. 반면에 방탕한 폭군이 나타나 백성을 수탈하고 농민의 생활이야 어떻게 되든 오불관언하는 일이 생기면 그 나라는 어둡고 비참한 몰골을 벗어날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외국군의 침범이라도 있게 되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앞장서야 할 백성조차 모두 줄행랑을 치고 만다. 이런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입금이나 정승 판서가 하는 게 아니라 백성들이 무기를 잡고 일어나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외면한 전쟁에서 패하지 않은 나라는 하나도 없다. 민주주의 국가가 된 현대에도 이 공식은 그대로 적용된다.
대통령이나 장관 국회의원 같은 정치지도자들은 시스템에 의해서 국민의 대표자가 된 것이지 그들이 나라의 주인은 아니다. 민주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따라서 국민들은 의무와 권리를 나눠 가지며 국가에 중대한 시련이 닥치면 언제나 부름에 응하여 위험 속으로 뛰어든다. 전쟁이 나면 군인이 되고,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구호의 손길을 뻗는다. 개인이 조난을 당하더라도 먼저 목격한 사람이 잽싸게 뛰어들어 구출한다.
이런 과정에서 전사를 하거나 부상을 입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전쟁이 아니었을 때는 의사(義死)나 의상(義傷)으로 호칭하며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국가가 나서서 보상해 준다. 이들은 남들이 하지 못한 일을 선두에 서서 행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조그마한 보상이라도 해주는 것은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최소한의 예의다. 훈장을 수여하거나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주는 것으로 희생에 대한 보상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얄팍한 인심이다.
희생자의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었거나 사랑하는 아들딸을 저 세상으로 보낸 슬픔에 뜬눈으로 밤을 새워 울어야 했다. 미국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이나 6.25 한국전쟁 등에서 전사한 미군의 유해를 찾기 위하여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지금도 세계 곳곳을 헤매는 것은 미국 국민의 애국심과 단결을 고취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에 대해서 최대의 경의를 표하며 그 어려움을 돕고자 한다. 정부에서는 연금(年金) 등으로 생활의 고달픔을 덜어준다. 취직이나 창업에도 우선권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이 정책을 펴나간다.
그런데 일부 여성단체와 시민단체 그리고 경제단체들이 이 제도를 무력화 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이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군필자에 대한 가산점제도가 위헌으로 판정받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게다가 업종별로 의무고용 비율이 정해져 있어 채용인원의 3~8%를 의무적으로 국가유공자를 채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이러한 고용명령제를 정부에서 앞장서 고치려 하고 있으며 경영 기업체들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최대의 모독이다.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니까 특별한 배려를 하고 보훈가족에게는 기업에 의무고용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대통령의 인식은 CEO시절에나 할 말이지 대통령으로서는 대실언(大失言이)이다.
그나마 작년 한 해 동안 의무고용명령제로 취업한 사람은 3700명에 불과하다. 의무고용 적용대상 기업이 1만6천 곳이나 되는데 겨우 5분의 1이다. 일부단체들이 형평성을 주장하지만 나라를 위한 숭고한 희생을 형평성에 비유하는 것부터 잘못이다. 업무에 지장을 줄만큼 무능력하다거나, 손해를 끼쳤다면 몰라도 편견으로 홀대하는 것은 있을 수없다. 국가유공자를 외면하는 정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단결과 애국심을 호소하며 신뢰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