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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세의 나이에 25년여 간 다니던 공직생활을 청산하고 새해 연휴에 선 미사리 강변의 찬 바람은 맺힌 가슴을 시원스레 뻥 뚫는 느낌이었다. 이제 강물처럼 자유롭게 흐르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대부터 나이를 한 살부터 다시 세기 시작했다.
중계본동에 거주하는 민화 명장(明匠) 류성자씨 인생이야기의 한토막이다.
유성자씨는 1939년 전남 광산에서 출생해 전남대 의대 간호학과를 마치고 1969년 서울에 첫발을 디딛는 날 4․19를 맞아 시위대 치료부터 시작된 삶은 1965년 김동완씨(육사 18기)와 결혼하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970년 남편이 동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지뢰를 밟은 중대원을 구하려다 산화하고 만 것이다. 이때부터 아들 둘을 가진 미망인으로 고단한 삶이 시작 되었지만 결코 되돌아보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의 동정어린 시선을 피하기 위해 남편의 순직사실도 숨기고 살았다.
1970년 영등포보건소 가족계획지도원으로 공직사회에 발을 들여 놓은 이후 종로․중구보건소, 남부병원, 서울시청 의약과에서 근무하며 간호행정의 영역을 넓혀 갔다. 이 과정에서 환자들을 내 몸같이 돌봤다는 공로로 ‘영 나이팅게일’상과 장애아 수용병원에서 헌신적으로 일한 공로가 인정되어 공무원의 최대 영예인 ‘청백 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3년 도봉구 쌍문3동장으로 부임해 1995년 광진구보건소에서 명예퇴직을 했다.
유송자씨는 사표를 내고 집으로 가는 길목인 동부간선도로에서 고단한 삶의 종지부를 찍는 해방감에서 차를 세우고 크게 외쳤다고 한다.
‘나 오늘 사표 냈다! 사표 냈다고~’
그리고 시작한 것이 그림이다. 도봉구민회관 유화반에서 그림을 배우는 중 지도강사의 추천으로 민화와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민화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민화를 그리며 민화 속의 풍경에서 느끼는 황홀한 세계, 그리고 어릴 때 꿈꾸었던 꽃 대궐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정식으로 민화 부문에서 색을 잘 쓰기로 유명한 안종혁 선생으로부터 7년여 동안 사사를 받았다.
그림을 시작한 지 13여년, 나이가 일흔이 되어 80여점의 민화와 수석 100여점으로 전시회를 가졌다.
유성자씨는 “그림을 시작할 때 내 나름대로 목표가 있었어요. 일흔살 먹으면 사람들에게 이만큼 노력하며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지요. 그리고 스승과도 약속했어요. 남들에게 그림을 줬을 때 하찮은 종잇조각 버리듯 하지 않겠다는 약속.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열심히 그렸습니다”라고 말했다.
뭇사람들이 민화가 모사작이라는 낮은 평가를 내리는 것에 대해 류씨는 “산수화나 문인화 역시 산을 보고 그리고 심지어 사진으로 찍어 와 그린다는 점에서 보고 그리는 것”이라며 “(민화는)머리를 안 쓰고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류씨는 자신이 그린 민화의 표구를 직접 제작한다. 아무리 열심히 잘 그려도 표구가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그림이 살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다. 이를 위해 5년여 년의 시간을 투자했다.
이외에도 수석에 취미를 가져 금강산의 축소판부터 12지신, 사군자 자태를 품은 수석 1000여점이 실내에, 2000여점이 마당에 있다. 류 씨는 스스로 담장을 허물고 이곳에 다양한 들꽃을 심었다. 가까이는 같은 동네 주민들로부터 멀리 공릉동에서까지 찾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젊어서부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 온 류씨, 그리고 긴 공직생활을 청산하고 해방감과 함께 시작한 붓과의 동거 13여년 만에 지난 12월 10일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협의회로부터 ‘대한민국전통명장증서’가 수여 됐다.
그리고 다사다난 했던 2011년이 마무리 되어가는 요즈음 류 씨의 손길이 더욱 바빠졌다.
2012년 임진년! 60년 만에 맞이하는 흑용 해에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용을 주제로 한 우리의 전통그림 민화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
